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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의학자가 미술관에 간 까닭은?
진료실에서 보내는 시간 다음으로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의사가 있다. 그는 오늘도 흰 가운을 벗고 병원을 나와 미술관으로 향한다. 그가 미술관에 간 까닭은 무엇일까?
상반된 분야처럼 느껴지는 의학과 미술은 ‘인간’이라는 커다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의학과 미술의 중심에는 생로병사를 겪는 인간이 있다.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처럼 인간의 신체적 완전성을 담고 있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푸젤리의 『악몽』처럼 인간의 정신세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무의식을 탐사하는 그림이 있다. 고야의 『디프테리아』는 질병에 신음하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브뢰헬의 『맹인을 이끄는 맹인』은 엑스레이와 CT 스캐너 같은 현대의 의료 장비보다 병세를 더 상세하게 투영한다.
의학자에게 있어 미술은 신체와 정신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즉 건강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의 기록’이다. 캔버스에 청진기를 대고 귀 기울이면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인간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박광혁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의학과 미술의 경이로운 만남을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내과전문의다. 그는 청진기를 대고 환자 몸이 내는 소리뿐 아니라 캔버스 속 인물의 생로병사에 귀 기울인다. 미술과 만난 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본령에 걸맞게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이 된다. 의학자의 시선에서 그림은 새롭게 해석되고, 그림을 통해 의학의 높은 문턱은 허물어진다. 저자는 지난 20여 년 동안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러시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림에 담긴 의학과 인문학적 코드를 찾아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 결과물이 이 책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으로 묶였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소화기내과 전임의를 거쳐, 내과전문의 및 소화기내과 분과 전문의로 환자와 만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인 소화기내과 자문의사로 활동했고, 현재 대한위대장내시경학회 간행이사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미술관에 간 의학자』와 『퍼펙트내과(1-7권)』, 『소화기 내시경 검사테크닉』 등이 있다.
청진기를 대고 명화와 의학의 숨결을 듣다
생로병사는 모든 인간이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삶의 궤적’이다. 한 인물의 삶의 궤적을 몇 점의 명화를 통해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1821년 사망한 나폴레옹은 사인(死因)을 둘러싸고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나폴레옹의 재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누군가 독이 든 음식을 먹였다는 ‘독살설’, 나폴레옹이 유배됐던 집의 노란색 벽지가 세인트헬레나 섬의 축축한 공기와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켜 맹독성 비소를 내뿜어내 나폴레옹이 비소에 중독돼 사망했다는 ‘비소 중독설’ 등이 있다. 나폴레옹 사인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미술관에 있다.
시간차를 두고 나폴레옹을 그린 세 점의 명화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의 생로병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다비드가 그린 『튈르리궁전 서재에 있는 나폴레옹』에서는 나폴레옹에게 찾아온 위암의 전조 증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 속 나폴레옹은 조끼 단추를 몇 개 푼 다음 오른손을 조끼에 집어넣고 있다. 나폴레옹을 그린 다른 화가의 작품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이 포즈는 명치 부위에 발생한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취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지 6년 뒤 영욕이 교차했던 생을 마감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베르네의 『임종을 맞는 나폴레옹』도 ‘위암’이라는 사인에 힘을 실어준다. 그림 속 나폴레옹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유배되기 몇 달 전을 묘사한 들라로슈의 『퐁텐블로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속 배가 불룩 나왔던 모습과 매우 대조적이다. 위암은 체중 감소, 식욕 부진, 지방 조직 및 근육 쇠퇴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74쪽).
의학의 눈으로 명화를 보면 그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길이 열린다
의학자에게 미술관은 진료실이며, 캔버스 속 인물들은 진료실을 찾은 환자와 다름없다. 그림 속 인물들은 질병에 몸과 마음을 잠식당해 괴로워하고, 삶의 유한성에 탄식한다. 그러다가도 질병과 당당히 맞서 승리하기도 한다. 그들의 고백은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담고 있기에,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카라바조가 그린 『병든 바쿠스』 속 바쿠스는 한눈에도 매우 아파 보인다. 생기로 빛나야 할 젊은 바쿠스의 얼굴은 창백하고 입술은 허옇게 떠 있다. 그의 눈을 보니 흰자위가 노란빛을 띤다. 간염에 걸린 환자에게 볼 수 있는 황달 증상이다. 빌리루빈은 간에서 죽은 적혈구를 분해할 때 생성되는 노란색 색소로, 간에서 죽은 적혈구와 함께 담즙으로 배설된다. 하지만 간에 병이 있으면 빌리루빈이 배출되지 않아 황달 증상이 나타난다. 『병든 바쿠스』는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술로 끼니를 때우다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염에 걸린,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208쪽).
한 사내가 거대한 하늘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는 그림이 있다. 그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고 있는 아틀라스다. 사전트의 『아틀라스와 헤스페리데스』는 그리스로마신화의 한 장면을 그렸지만, 의학자의 눈에는 우리 몸을 촬영한 엑스레이 사진과 다름없다. 척추뼈 가장 꼭대기에서 4~7kg, 그러니까 수박 한 통보다 무거운 머리를 떠받치는 뼈(제1 목뼈)의 이름이 ‘아틀라스’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아틀라스가 떠받치고 있는 하늘은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들이다. 24시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디지털 기기들 때문에 우리 몸속 아틀라스는 거북이 목처럼 변형되고 있다(366쪽).
주둥이가 짧은 커피포트를 거친 붓 터치로 그린 그림이 있다. 커다란 몸통에 가늘고 짧은 다리가 달린 커피포트의 형상이 기이하게 느껴진다. 『커피포트』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정물화가 아니다. “나의 몸은 주둥이가 너무 큰 커피포트처럼 생겼다네”라고 자신의 장애를 위트 있게 표현할 줄 알았던 한 남자의 자화상이다. 유전병으로 성장이 멈춘 짧은 다리와 그에 걸맞지 않게 큰 머리와 통통한 몸, 로트레크는 커피포트의 모습을 빌려 캔버스에 자신의 몸을 그렸다(182쪽).
문명을 괴멸시킨 전염병부터 마음속 생채기까지
진료실 밖에서 만난 명화 속 의학 이야기
이중섭은 디프테리아로 아들을 잃고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그림을 한 점 그렸다. 구상 시인이 그림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기 천국 가는 길이 심심하지 말라고 친구들을 그려 넣었어. 배고프지 말라고 복숭아도 그려 넣었고.” 이중섭은 작은 나무 관에 아들의 시신과 그림을 함께 넣고 묻어주었다(90쪽). 선천성 골계통질환인 ‘농축이골증’을 앓았던 로트레크는 “내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면 난 결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이야기 했다(195쪽). 화가에게 찾아온 질병과 그들이 목격한 질병에 신음하는 인간의 모습은 ‘붓’이 되어 수많은 명작의 산파 역할을 했다.
페스트, 스페인독감 같은 치명적 전염병은 문명의 쇠퇴와 몰락을 부추기며 인류 역사를 바꿔놓았다. 전염병이 휩쓸고 간 처참한 세상의 모습은 어떤 의학 자료보다도 생생하게 캔버스에 재현됐다. 간염, 통풍, 내반족, 메데이아 콤플렉스처럼 오래전 그림에 담긴 몇몇 질병은 현재에도 여전히 위협적인 질병이다. 이 책은 명화를 통해 인류에게 재앙과 같았던 치명적인 전염병부터 외과 의사의 출현, 항생제와 백신의 개발, 정신분석학의 탄생, 초음파와 같은 첨단 의료 장비의 등장 등 의학의 주요 분기점들을 친절히 설명한다.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에서 이성과 감성을 통섭한다
흔히 과학과 예술은 대척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사람이 ‘서양 의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다. 의학자가 왜 예술의 수명에 탄사를 보냈을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히포크라테스는 과학자에 속하는 의학자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예술가였다. 본래 과학과 예술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아트(art)’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다. ‘테크네(techne)’가 라틴어에서 ‘아르스(ars)’로 바뀌었다가, 영어에서 예술을 의미하는 ‘아트(art)’와 기술을 의미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로 분리됐다. 의술은 본래 예술 안에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의학을 찬미했던 것이다.
‘인류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다빈치는 의사들보다 인체를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알고 있었다. 점묘법을 창시한 인상파 화가 쇠라는 자신의 그림에서 사람들이 ‘시(詩)’가 아니라 ‘과학’을 보길 원했다(88쪽).
과학과 예술은 융합을 통해 완성된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이 교류하는 학문이다. 명화는 의학에 뜨거운 온기를 불어넣는다. 과학과 예술의 교차점을 탐사하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이성과 감성의 멋진 랑데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접어보기
추천평
미술과 의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의사인 저자가 명화 속에서 의학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 심리학 등 인문학을 끌어내는 솜씨와 식견이 놀라울 따름이다. 미술과 과학의 크로스오버는 본래 예술과 과학이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했음을 되새기게 한다.
유교상(한양대학교의과대학 내과 교수)
의학, 철학, 문학, 신화, 미술 등 학문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저자는 이 시대 ‘지식의 전령사’ 헤르메스이자, 통섭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 노마드다. 이 책은 과학, 예술, 인문학을 통섭한 결실이다.
김원익(세계신화연구소장)
진료실 밖에서 저자를 만났다면 미술사학자라고 철석같이 오해한다. 그러나 의학 지식과 의료 현장에서 쌓은 경험에서 비롯된 그만의 독특한 작품 해석을 듣다 보면 ‘의사’라는 그의 본업을 떠올리게 된다. 이 책은 이성을 대표하는 과학과 감성을 대표하는 예술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김문기(서울도슨트협의회(SD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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