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인물상, 국립중앙박물관, 스핑크스, 파라오, 피라미드, 투탕카멘, 성경, 출애굽기, 호루스, 람세스2세, 이집트의 수호자, 하트셉수트, 투트모세3세, 아멘호테프, 아크나톤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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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신설되는 이집트실은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에서 오는 미라와 관, 석상과 부장품 등 94점을 2년간 선보입니다. 서양문명의 기원이 되었던 찬란한 이집트 문화유산을 통해 영원한 삶을 꿈꾸었던 고대 이집트인들의 염원과 생활상을 생생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시아실, 중국실은 전면개편으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선보입니다.
중앙아시아실에서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단과 북단을 지나는 서역남도와 서역북도를 통해 인도, 서아시아, 중국 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지역에서 수집된 문화재를 선보입니다. ‘서역남도’의 로프노르·누란 출토품과 ‘서역북도’ 투루판의 대표 유적인 아스타나 무덤 출토품을 소개합니다.
인도동남아시아실에서는 인간을 닮은 간다라 불상과 힌두교 신상을 전시하고, 후반부에는 온화함과 생명력이 조화를 이룬 크메르 조각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미술을 소개합니다.

중국실에서는 중국 신석기시대부터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중국 고대문화를 대표하는 다양한 형태의 청동기와 고대 중국인들의 부장품인 도용 그리고 칠기공예와 도자, 회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전시품이 새롭게 전시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중국도자 영역이 가장 새롭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 도자를 월요, 요주요, 용천요, 정요, 자주요, 경덕진요 등 주요 도요지별 전시와 함께 명·청대의 화려한 채색자기까지 중국 도자사의 흐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중국문화를 즐기며 휴식할 수 있도록 중국실 내에 중국 명대의 문인 서재공간을 재현하여 중국문화를 더욱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향후 이곳에서는 중국관련 강연과 공연 등이 개최될 예정입니다.

"다양한 문화, 확장된 시선"
새롭게 개편되는 중앙아시아실, 인도동남아시아실, 중국실의 다채로운 미술품과 함께
새로 문을 여는 이집트실에서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정수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개관일자: 2019년 12월 16일(월)
※ 온라인전시관 및 각 전시실 페이지에서 다양한 세계문화관 영상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전시관: https://www.museum.go.kr/site/main/exhiOnline/list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3층 세계문화관

관람료: 무료
관람방법: 상설전시관 관람을 예약하여 입장

※ 상설전시관은 코로나19로 인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전 예약 후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예약 인원 미달 시 현장에서 입장권 발권 후 입장)

어원은 고대 이집트어 'p r â'에서 온 단어로, 모음을 붙여 'perâa(페르아)'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고대 이집트의 문자 체계는 모음을 표기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일부 언어학자들의 추측이다. 이집트어를 계승한 콥트어로는 '퍼로(ⲡⲣ̅ⲣⲟ, pərro)'로 읽는다. 뜻은 '큰(â)집(pr)', '궁정'이나 '왕궁'을 의미한다. 고대 이집트 초기 왕조부터 쓰였던 흔적이 있으며, 여기서 파생되어 통치자 자신을 이르는 말로 변했다. 현대식으로 말하면 청와대, 백악관 등이 각각 대한민국 대통령·미국 대통령을 둘러 말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것과 비슷하다. '파라오'는 'p r â'를 그리스어식으로 모음을 붙여 읽은 것.

한국의 개신교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가 파라오를 '法老'(중국어 발음은 fa lao)로 음차한 사례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아 많은 개신교인들이 바로를 인물명으로 알고 있다. 고전적인 표현을 현대 통용 표현으로 옮기는 데 적극적인 한국 천주교에서 쓰는 성경에서는 '파라오'라고 번역하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성경/번역 문서와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 문서를 참고하자.

쿠란에서 아랍어로 'فرعون(frâwn, 파르아윈)'으로 읽는다.
3. 다섯 가지 이름[편집]
파라오는 다섯 가지 이름을 가진다.

순서대로 호루스 이름(Horus name), 네브티 이름(Nebty name, 두 여신 이름Two ladies name으로도 불림), 황금 호루스 이름(Golden Horus name), 즉위명(Prenomen), 출생명(Nomen)이다.

예를 들어 람세스 2세의 경우 호루스 이름은 '라의 사랑을 받는 강한 황소(Ka nakht mery Ra)', 네브티 이름은 '외방(外邦)을 억제하는 이집트의 수호자(Mek Kemet Waf Khasut)', 황금 호루스 이름은 '오랫동안 부유한 자, 승리에서 위대한 자(User renput aa nehktu)', 즉위명은 '라의 정의는 강하다 - 라가 선택한 자(User Maat Ra, setep en Ra)', 출생명은 '아문의 사랑을 받는 라메세스(Ramessu mery Amun)'이다.
4. 신격화[편집]
파라오는 호루스의 화신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를 신격화하여 하계에 내려와 통치하는 신으로 섬겼다. 태양신 라가 선발한 파라오는, 세상에 내려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지인 이집트를 통치하는 대리자가 되었다고 믿었다.
5. 왕위 계승과 왕의 아내, 어머니[편집]
과거에는 왕비 계승권을 가진 최고위 왕족 여성과 혼인한 남성이 파라오로 즉위하는 '여계 계승자 이론(Heiress Theory)'에 따라 이집트 왕위 상속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는 1980년대에 부정되었다.[2] 제18왕조 왕위 계승 기록이 저 모계 계승자 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18왕조는 신왕국 시대의 왕조. 신왕국 시대의 아멘호테프, 아크나톤, 투트모세, 하트셉수트, 투탕카멘 등 대중에게 제일 잘 알려진 파라오들이 등장하는 시기다. 일단 '최고위 여성 계승자'를 정하는 기준 자체가 불분명할 뿐더러, 파라오의 왕비가 정말 '파라오'로 간주되었는지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남성 계승자는 선왕이 정했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 반면, 여성 계승자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나오질 않는다. 여계 계승자설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하트셉수트와 같이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왕비는 파라오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본다. 후술할 '위대한 왕의 아내'는 황태후에 가까운 개념일 뿐 왕은 아니다.

당장 18 왕조의 여성 통치자로 유명한 하트셉수트를 보면, 남편이자 이복형제인 투트모세 2세가 죽고서 바로 공식적인 파라오로 인정받지 않았다. 일단은 어린 투트모세 3세를 대신해 통치를 담당할 섭정으로 지명되는데서 그쳤다. 그녀가 벽화나 부조에서 파라오로 묘사되기 시작한 것은 투트모세 3세의 치세가 시작되고 시간이 흐른 후다. 그녀는 투트모세 2세 사후 왕좌에 대한 권리를 요구함으로써 왕위에 올랐고 제1파라오로서 활동했는데, 이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형태의 승계였다. 여기에 여계 계승자 이론을 적용하면 이미 최고위 여성 파라오로서 왕위 계승권을 쥔 하트셉수트가 왕좌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여 쟁취한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된다. 참고로 남편이 급사하여 섭정 통치를 맡게된 이집트 왕비들은 하트셉수트 외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다음 남자 후계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통치를 담당하는 수렴청정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이며 기록에서 왕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현재는 왕위 상속이 선대 파라오에서 장남에게 계승되는 일종의 '장자 우선 상속제'에 의거해 이루어졌다고 본다. 즉, 부계 중심의 계승인 것이다. 몇몇 선대 파라오들은 생전에 미리 후계자를 섭정으로 지명하고 공동 통치를 진행했다.

파라오는 정실을 제외하고도 여러 명의 측실을 두었으며, 이렇기에 수많은 동맹국의 공주를 자기의 아내로 맞이하여 동맹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의 처가 다수라고 하더라도 위대한 왕의 아내(Great Royal Wife)라는 호칭을 받는 아내는 하나 뿐이었다. 단순히 정비, 으뜸 아내라는 개념만이 아니라 왕의 어머니의 의미까지 있는 용어인데, Great Royal Wife의 아들만 파라오의 직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이 왕위에 오를 경우 그 파라오의 어머니에게 Great Royal Wife의 칭호를 부여할 수 있었다.
6. 왕의 무덤: 피라미드[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피라미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신인 파라오가 죽는다는 것은 그저 왕의 죽음이 아니라 세계의 대사건이었으므로, 파라오는 생전에 후계자를 점지해 미리 권좌에 앉혔다. 죽은 파라오는 미라가 되어 영생한다고 믿었고, 피라미드는 사후세계 파라오의 거주와 통치를 위한 궁전을 위한 것이었으며 후기에는 굴을 파서 만든 무덤에 안치되었다.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어디까지나 확실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피라미드에서 왕의 유해가 나온 적도 없거니와 피라미드하면 가장 유명한 쿠푸왕의 아버지는 피라미드를 2개나 만들었다. 자기 몸이 둘도 아닌데, 2개씩이나 만들 이유가 없다. 또한 피라미드로 유명한 중남미에서도 어디까지나 제례용이지 무덤도 아니다. 간혹 중국은 무덤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의 것은 그냥 무덤이고, 서양인들이 산 같아 보이는 모습을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슷하다고 하면서 나온 것이다.

피라미드에서 왕가의 계곡으로 묘지가 바뀐 것은 피라미드 건설 비용이 너무 비싸서, 그리고 권력 다툼으로 인한 왕실의 힘 약화 등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도굴 때문이다. 피라미드 안치 후 며칠 만에 도굴당하는가 하면, 후기 파라오들의 선대 피라미드에 대한 인식도 성스러운 것만이 아니어서 선왕의 피라미드 자재를 떼어내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데 쓰곤 했다.

결국 도굴 문제로 왕가의 계곡으로 묘지를 옮겼지만, 도굴꾼들의 의지와 솜씨가 훨씬 위였다. 투탕카멘은 때때로 기록조차 말살당할 정도로 당대에는 존재감이 없어, 오히려 심하게 도굴당하지 않은 극히 희귀한 사례다. 투탕카멘의 무덤도 흔히 한 번도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무덤 조성 직후에 몇 번 조금이나마 도굴당하긴 했다. 이후 입구가 파묻히고 세월이 지나면서 잊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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