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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클래식, 김호정, 콘서트홀이 얼마나 웃긴데요, 현악4중주단, 공연장,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 암보, 베토벤, 뉴욕필하모닉, 뉴욕타임즈, 모짜르트, 잘츠부르크, 감독
암보가 일반화한 건 프란츠 리스트부터라고 보는 게 맞다. 음악회 역사상 가장 상업적 스타였던 그는 독주회에서 악보를 객석에 집어 던지는 ‘쇼맨십’을 보여준 후 몇 시간 동안 악보 없이 음악회를 끝냈다. 그의 음악회에 지나치게 열광한 여성 팬들이 기절했을 정도였다. 리스트의 과시욕 때문에 후배 피아니스트들이 암보라는 벽을 넘게 됐다.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 그렇다면 악보라는 커닝페이퍼만 있으면 연주자들은 100점짜리 시험을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악보는 자전거의 보조 바퀴와 비슷하다. 자전거를 배우는 단계에서 보조 바퀴는 넘어지는(악보를 잊어버리는) 걱정을 하지 않고 달리는(연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하지만 더 큰 자전거(청중 앞에서 연주)로 갈아타고 나면 보조 바퀴(악보)는 종종 ‘질주’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p.53
베토벤의 청각 장애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그간 수많은 위인전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초인적 역경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베토벤의 청력 이상이 정말 나쁘기만 한 장애물이었을까? 청력 악화는 그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의 길에서 일찌감치 후자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청력이 나빠지면서부터 무대 위에서 예전처럼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다만 작곡에 매진했다. 또한 머릿속에서 흘러 다닌 음악은 귀로 듣는 음악보다 전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청각 장애는 음악의 시대 흐름을 얼마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p.90-91
2008년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연주를 취재하러 동행했을 때 멘델스존을 들었다. 뉴욕 필 4명과 북한 연주자 4명이 함께 한 현악 8중주였다. 멘델스존 특유의 잘게 쪼개지는 음악은 북한 연주자들에게 특히 어려웠다. 8명은 몇 번 조율한 끝에 이 어렵고 복잡한 천재의 음악을 완성해냈다. 당시 나는 함께 있던 〈뉴욕타임스〉 음악 담당 기자 대니얼 J. 월킨(Daniel J. Walkin)과 눈빛을 나눴다. ‘북한에서 멘델스존을?’ 멘델스존은 유대인의 의식에 지금도 영향을 주는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자기 노동력으로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 부르주아인 멘델스존을 북한의 연주자들이 연주한다고? p.119-120
‘못하겠다는 생각’은 많은 예술가를 관통한다. 모차르트는 좋은 도시에서 음악 감독직을 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고향 잘츠부르크에선 쫓겨나다시피 했다. 언제나 시대와 불화했던 베토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늘 더 좋은 도시로 옮겨가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접근’하며 살다시피 했다. 브람스는 베토벤 극복이 평생 화두였지만 부족하다고 여겼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 괴상한 기계로 손가락 길이를 늘렸을 정도로 평생 콤플렉스와 살았다. 예술가들의 좌절을 이야기하면 늘 라흐마니노프가 마음에 걸린다. 그의 교향곡 1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그의 음악은 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p.141
“세련된 뉴요커들과 평양 풍경의 문명 충돌을 그려와라.” 2008년 2월 입사 4년 차였던 나에게 내려진 ‘지침’이다. 나는 이렇게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과 지휘자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2014)은 평양에서 45시간 30분을 머물렀다. 당시 미국과 북한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핵 문제로 대립하던 국면이었는데도, 음악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듯 흘러갔던 때다. 역사에 남는 ‘싱송(Sing-song) 외교’의 하나로 뉴욕 필 평양공연이 열렸다. 아시아나항공사가 내어준 전세기 이름은 ‘1004(천사)’였다. 천사처럼 평화를 전하고 온다는. ‘천사’ 속 뉴욕 필 단원들은 패닉이었다. 나는 베이징에서 그들을 만나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를 함께 탔다. 그 직전에 단원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가 열렸는데, 분위기는 전쟁과도 같았다. p.154-156
어떤 사람은 경쟁을 즐긴다. 낙오할 것 같은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짜릿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손열음은 경쟁을 즐긴 게 아니다. 그저 무대, 그 위에서 피아노 연주를 즐겼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이상할 정도로 경쟁심이 없었다. 지극히 무경쟁적인 천성을 가져서 주위 사람을 김빠지게 할 정도였다.” 손열음이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글 중 한 부분이다. 비교하지 않고 자기 소리에 집중하는 천성이 손열음의 이력을 빛나게 만든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비행기를 타고 국제 콩쿠르에 출전하며 눈부신 소식을 들고 돌아오곤 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느라 스스로 방해하는 대신 오롯이 자신과 자기 음악에 집중하며 성장해온 피아니스트다. p.182
조성진의 실력은 어린 시절부터 유명했다. ‘기가 막히게 피아노를 잘 치는 소년이 있다’는 소문이 2000년대 초반부터 흘러 다녔다. 2009년 하마마츠 콩쿠르 우승 후 그의 작은 독주를 보러갔다. 잘 배워서 잘 치는 학생 정도가 아니고 음악이 알아서 흘러나오는 연주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음악은 스스로 길을 찾아갔다. 당시 독주에서 연주했던 베토벤 ‘열정’ 소나타는 그 직전 콩쿠르에서도 쳤던 곡인데, 두 연주가 전혀 달랐다. 당시 이런 질문과 답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콩쿠르 때랑 속도도 다르고 많이 다르네요?”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친 거라서요.” p.188-189
카플란은 이 한 곡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악보를 읽는 법부터 배웠고 화성법, 지휘법, 음악 이론까지 공부했다. 물론 가정교사를 뒀다. 데뷔는 1983년 마흔한 살 때 했다.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자기 돈을 내고 아는 사람들을 초대해 객석에 앉힌 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독창자를 지휘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진다. 객석과 평단의 호응 끝에 전 세계 50개가 넘는 오케스트라와 말러 2번을 연주하게 된 것이다. 한 곡만 집중적으로 훈련한 카플란의 말러 2번은 웬만한 프로 지휘자보다 나을 때도 있다. 말러의 공식 협회에서 2번 악보를 개정할 때 카플란의 자문을 얻을 정도였다. 재단도 세웠다. 카플란 재단은 말러 2번에 대한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뉴욕 필하모닉은 말러의 미국 데뷔 10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면서 2번 교향곡 지휘를 카플란에게 맡겼다. p.202-203
지휘자는 무대 뒤에서 많은 부분을 완성한다. 지휘자 최수열은 “무대 위에서는 하나도 긴장이 안 된다. 하지만 연습하려고 만난 첫날은 엄청나게 떨린다”라고 했다. 연주를 하기 전 무대 뒤 연습실에서 지휘자가 하는 일은 대부분 완성된다. 동독의 상징이 된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1996)의 연습 장면을 담은 DVD를 보면 지휘자의 업무를 더 잘 알게 된다. 첼리비다케는 작품의 마디 번호까지 모두 외우고 있고 작곡 배경, 진행 스타일까지 단원들에게 세세하게 설명한다. 뉴욕 필하모닉을 맡은 지휘자 얍 판 츠베덴(Jaap Van Zweden)은 아주 짧은 16분음표 하나만 빠져도 지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p.214-215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 1위에 입상하면 가장 기쁜 건 1위에 입상한 자체가 아니다. 정글 같고 때로는 코미디 같은 콩쿠르에 다시는 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콩쿠르 스타의 가장 큰 행복이 콩쿠르로부터 해방되는 것인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해피 엔딩은 아니다. 수상 직후 인터뷰한 많은 우승자의 일성은 “다음 연주가 걱정된다”였다. 무대 위 음악은 아름답지만 연주자의 속마음은 이토록 전쟁터다. 콩쿠르는 그 수많은 전투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전장이다. p.224
쇼팽은 200여 곡을 닫기
출판사 서평
읽기 시작하면 재미있고
결국은 클래식을 사랑하게 되는 책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요즘 콘서트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서는 클래식 공연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았다. 연주자들의 무대 공포증, 다른 악기 연주자들과는 다르게 유독 피아니스트들만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는 이유, 대타로 시작해서 스타가 된 연주자들, 왼손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까지 하나하나 호기심을 유발하고 클래식을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겼다. 2장 ‘어떤 사람이 이런 곡을 썼을까?’에서는 유명한 작곡가들의 인생과 그들의 음악을 다룬다. 베토벤, 하이든 등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결코 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슈만, 라흐마니노프, 라벨, 에릭 사티, 윤이상 등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작곡가들의 인생과 그에 필연적이었던 음악 이야기를 담았다.
3장 ‘내가 만난 연주자들’에서는 현대의 음악가들을 소개한다. 사이먼 래틀, 안드레아 보첼리, 로린 마젤, 요요마, 손열음, 조성진과 백건우까지. 그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눈 흥미로운 취재담과 그들의 음악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음악 저변의 상식도 넓힐 수 있다. 4장 ‘클래식에 대해 정말 궁금한 것들’에서는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 지휘자는 뭘 하는 사람인지, 프로들의 세계일 것만 같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아마추어 음악가들, 비운의 여성 작곡가의 일생 등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하다.
각 글마다 저자가 추천하는 클래식 명곡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본문 속 이야기의 바로 그 공연을 볼 수 있는 큐알코드를 넣었다. 휴대전화로 스캔하는 바로 그 순간, 그곳이 곧 나만의 콘서트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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