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걷고싶은길,김남희,훗카이도,혼슈,시레토코,반도,불곰,버스터미널,이와오베쓰,유스호스텔,시골여관,바쇼,야생의고양이,들개,연어,송어,전망대,마지막곡,원시림,호수,길가의풀섶, 불곰

10 months ago

목차
1권 홋카이도. 혼슈

1부 홋카이도 * 여름
고운 님 앞세우고 말없이 걷고 싶은 꽃길 _ 레분토
호기롭게 시작한 야영은 하룻밤 소동으로 끝나고 _ 리시리토
불곰을 기다리며 울창한 원시림을 거닐다 _ 시레토코
아쉽게 놓쳐버린 일본 최대의 습지 산책 _ 구시로 습원
겨울눈 위로 여름꽃 피어나는 홋카이도의 지붕 _ 다이세쓰잔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든 거대한 조각보 _ 후라노와 비에이

2부 혼슈 * 가을
이글거리는 분화구와 깎아지른 절벽의 야성적 매력 _ 북알프스 다테야마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도시 _ 마쓰모토
에도 시대 나그네가 되어 찾아간 역참 마을 _ 쓰마고와 마고메

3부 혼슈 * 늦가을
눈 내리는 새벽길을 지나 가을의 절정 속으로 _ 닛코 센조가하라
긴긴 기다림 끝에 벼락처럼 나타난 후지산 _ 하코네 묘진가타케와 미쓰토게야마
고요한 가을빛처럼 이 땅에 평화가 내려앉기를 _ 히로시마 산단쿄
단풍과 함께 타들어가는 절간의 오후 _ 교토 다이몬지 산

4부 혼슈 * 겨울에서 봄으로
가도 가도 그리운 옛 도읍 _ 교토 아타고 산과 아라시야마
첨단 기술과 미신이 공존하는 수수께끼의 나라 _ 교토 구라마와 기부네, 히가시야마
경주를 닮은 옛 수도 _ 나라 공원과 도다이지
곧 어두워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발길을 돌리지 못해 여덟 시간 코스로 들어선다. 이곳부터는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다. 멀리 바다가 흘깃 얼굴을 드러낸다. 풍경에 취해 걸음은 절로 느려진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바람에 몸을 내맡긴 꽃들과 꼭 한 사람이 걸어갈 만한 흙길, 엎어놓은 조선 막사발 같은 구릉 너머 가없는 바다. 팔 벌리고 바닷바람 맞으며 꽃들 사이를 걷다 보니 몸이 절로 둥실거릴 것만 같다. 고운 님 앞세우고 말없이 걷고 싶은 길, 세상의 일 따위야 까맣게 잊어버린 채 머물고만 싶은 길이다. 길의 끝까지 가고 싶지만 이미 해가 설핏하여 발길을 돌린다. 못 다 걸은 길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고.
레분토에서(1권 본문 21쪽)

홋카이도를 떠올릴 때면 늘 겨울의 눈 쌓인 풍경이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겨울, 삿포로와 오타루를 여행했다. 겨울의 홋카이도는 듣던 대로 눈의 나라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고 굵은 눈발이 하루 종일 흩날리곤 했다. 흔적도 없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는 폭설은 경이로웠다. 눈은 쌓이고 또 쌓여 홋카이도 전체를 설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의 홋카이도와 겨울의 홋카이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름의 손을 들겠다. 다른 곳처럼 습기와 더위에 지친 녹음이 아니라, 싱싱하고 상쾌한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홋카이도의 여름. 몇 번이고 돌아오고 싶다.
후라노와 비에이에서(1권 본문 37쪽)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조건은 이렇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곳. 산으로 둘러싸인 곳.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규모. 너무 번잡하지도 너무 적막하지도 않은 분위기. 도시로서의 편리함을 갖추었지만 미적 품격도 느껴지는 곳.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 마쓰모토는 그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이 도시는 동서남북이 모두 산에 둘러싸였다. 도시를 걷다가 눈을 들면 어디서나 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전선조차 보이지 않는 옛 상점가 나카마치도리가 있고, 400년 된 목조 성이 도시 중심에 근사하게 서 있다. 그리 번잡스럽거나 요란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도시의 기능은 살아 있는 듯하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강변을 따라 도시의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느긋해지는, 비싸지 않으면서 아늑한 숙소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마저 충족시킨다. 나는 금세 이 도시가 좋아졌다. 도시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처음 발견한 일본의 사랑스러운 도시다. 마쓰모토에서(1권 본문 118-119쪽)

에이칸도를 나와 ‘철학의 길’로 접어든다. 주택가 한가운데 비와코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2킬로미터 남짓한 길이다. 붉게 물든 벚나무가 늘어선 양쪽으로는 예쁜 가게며 카페, 식당이 눈길을 끈다.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여름밤에 이 길은 또 얼마나 정겨울까. 이 길이 철학의 길로 불리게 된 이유는 교토 대학의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 교수가 이 길에서 산책을 즐겼기 때문이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 교수도 이 길을 즐겨 걸었다고 한다. 자다가도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연필을 집어들고 수첩에 뭔가 휘갈겨 쓴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잠드는 메모 습관으로 유명한 겐이치 교수는 노벨상 수상 비법을 이렇게 전수했다.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을 메모하라. 사색하기 좋은, 경사가 약간 있는 길을 걸어라.”
교토 대학의 총장 역시 그 대학 출신의 자연과학자들이 다섯 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비결을 묻자 ‘산책하기 좋은 지형’을 꼽기도 했다. 산책이라면 나 역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교토 다이몬지 산에서(1권 본문 178-179쪽)

접기
출판사 서평
“풍경에 취해 걸음이 절로 느려진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2년 만에 펴낸 걷기여행 신작

북으로 홋카이도에서 혼슈. 규슈. 시코쿠를 거쳐 남으로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2년에 걸쳐 일본 최고의 걷기 여행 코스들을 찾아 헤맨 도보여행가 김남희의 신작. 한 나라에 대한 여행기로서는 이례적으로 2권으로 묶어내야 했을 만큼 일본 열도 전역의 주요 트레킹 코스를 총망라했다. 김남희 특유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유려한 문체와 정감 넘치는 입담으로 마치 일본의 시골길을 직접 거니는 듯한 풍성한 행복감을 안겨준다.
최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일본 여행기들이 주로 접근이 용이한 유명 도시나 관광명소를 무대로 하는 데 반해, 이 책은 일본의 다양한 풍경을 탐색해 들어간다. 보통 일본 하면 도쿄, 홋카이도 하면 삿포로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에 그런 유명 도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잘 알려진 곳보다는 덜 알려진 곳들을 찾고 싶었고, 도시보다는 자연과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을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을 여행한다는 건 진한 화장을 한 게이샤의 무표정한 얼굴 너머를 들여다보려는 일 같았다. 몸에 밴 친절과 예의 속에 감춰진 진심을 들여다보고픈 갈망. 그런 내 시도는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다. 길 위에서 만난 일본은 매혹적이었다. 사람들은 상냥했고, 음식은 담백했고, 시골 마을 구석구석에 전통문화가 살아 있었다. 무엇보다 놀랍도록 잘 보존된 자연 환경이 부러웠다. 여행을 할수록 나는 이 나라가 좋아졌다. 가까이에 이토록 사랑스러운 이웃이 있다니, 이토록 거대한 자연이 남아 있다니……. (‘프롤로그’에서)

처음엔 사전 준비 없이 그냥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다. 시코쿠만 걸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본 일본은 그동안 알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작가는 자기도 모르게 일본의 매혹적인 풍경들에 빠져들었고, 그러다 보니 2년 사이에 아홉 차례나 일본을 드나들게 되었다. 정작 오랫동안 꿈꿔온 중남미 여행 계획은 뒷전으로 미룬 채.
홋카이도에서는 꽃의 부도(浮島)라 불리는 ‘레분토’, 일본의 마지막 비경으로 세계적인 불곰 서식지인 ‘시레토코’, 일본에서 가장 예쁜 마을로 꼽히는 ‘후라노’와 ‘비에이’를 돌며 천상의 화원이 선사하는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혼슈에서는 3천 미터급 봉우리들이 우뚝 솟은 북알프스 ‘다테야마’, 후지산의 경이로운 면모를 재발견하게 해주는 ‘묘진가타케’와 ‘미쓰토게야마’(하코네)를, 규슈에서는 수령 1천 년이 넘는 삼나무만 2천여 그루가 살고 있는 ‘야쿠시마 섬’ 등을 오르며 자연의 장대한 야성미에 흠뻑 젖었다.
어디 자연뿐인가. 도시 전체가 미적 품격을 갖춘 ‘마쓰모토’, 세월을 거슬러 에도 시대로 돌아간 듯한 역참 마을 ‘쓰마고’와 ‘마고메’, 일본 정원의 교과서로 불리는 소겐치 정원이 있는 ‘덴류지’와 대나무숲길 ‘지쿠린’, 주민들이 살기 좋은 마을이 훌륭한 관광지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후인’,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이시다다미 돌길’(오키나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견되지만 오셋타이라는 특유의 공양 전통이 살아 있는 ‘시코쿠 순례길’ 등은 일본 문화의 단아하면서도 웅숭깊은 매력으로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자, 이래도 일본에 안 갈 테야?” 하고 유혹하듯 작가가 조곤조곤 들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공항으로 가 일본 행 비행기를 타고 싶은 충동이 일게 될 것이다.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꼼꼼한 성찰, 걷기 여행에 관한 빛나는 아포리즘은 덤이다.

[ 책속으로 추가 ]

오늘은 나 혼자 교토를 돌아다니는 날. 집에서 가까운 아라시야마로 향한다. 아라시야마 역에 내려 도게쓰쿄(渡月橋)를 건넌다. 오이가와 강 위에 걸린 이 다리는 ‘달님이 건너는 다리’라는 예쁜 이름을 지녔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1272년, 나들이에 나섰던 천황이 “환한 달이 다리를 건너가는 듯하구나”라고 탄복한 후 새 이름을 얻었다나. 나무로 만든 이 다리는 단순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보는 순간 내 마음을 앗아간다. 봄에는 강변의 벚꽃이 길목을 환히 밝히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화려한 아라시야마의 명물이다. 다리 위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산과 강변, 마을의 풍경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헤이안 시대부터 귀족들이 이곳에 다투듯 별장을 짓고, 문인들이 은둔하며 글을 쓰던 까닭을 알 것 같다. 아라시야마에서 사가노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벗 삼아 산책하듯 거닐기 좋은 곳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덴류지로 들어선다. 1345년에 창건된 이 절은 임제종 덴류지 파의 사찰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절을 유명하게 만든 건 ‘일본 정원의 교과서’로 불리는 소겐치 정원. 선승이었던 무소 소세키가 선수행의 한 방법으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못 주변의 푸른 소나무와 하얀 모래가 대비를 이루고, 3단 폭포 아래 놓인 돌다리가 앙증맞다. 본당으로 들어서니 가노 단유(탐유, 1602~1674)가 그린 운룡도가 시선을 끈다. 구름을 뚫고 승천할 듯 포효하는 용의 기상이 매섭다. 교토 구라마와 기부네, 히가시야마에서(1권 본문 198-199쪽)

Loading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