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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은 조선이 이긴전쟁이었다,양재숙,서울포기,평양피신,충주,음성,죽산,용인,창녕,고로다나가마사,초계,거창,지례,금산,본대,충청도,황간,청주,진천,죽산,추풍령,여주,남한강,양수리
목차
들어가면서
제1장 개전전야
1. 200년 평화에 국방을 잊어
2. 망국의 길목에 들어선 대명제국
3. 대륙을 향한 군국 일본의 꿈
4.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제2장 1차 전쟁: 임진왜란
1. 침공군 16만 나고야에서 발진
2. 조선왕조 사상 가장 길었던 날
3. 침공 20일 만에 떨어진 수도 서울
4. 평양에서 정지된 일본군 진격
5. 전라도 방어전 승리 군수 병력 수군기지로
6. 무적함대
7. 의병전투
8. 반격작전
제3장 전쟁과 평화
1. 명과 일본 지루한 강화회담
2. 이순신 함대증강, 전함 1509척
제4장 2차 전쟁: 정유왜란
1. 일본군 12만 재침공 명군 재출동
2. 원균 휘하 조선 수근 칠천량에서 전멸
3. 일본군 전군 동원 전라도로 진격
4. 13척이 200척을 격멸_ 명량대해전
5. 일본군 총퇴각, 연합군 총반격
6. 조.명 연합군 최후 공격으로 일본군 패주
7. '이순신은 자살했는가' 의문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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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조선에는 일찍부터 강력한 수군이 발달했다. 육군의 진관체제와 같이 각 도에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水使)를 두고 그 밑에 첨절제사 동첨절제사를 두었고 포구 요새에 수군만호를 배치했다. 군사를 전담하는 무관인 병사와 수사가 배치되는 곳에는 육군의 병영(兵營), 수군의 수영(水營)이 설치되었다. 전쟁이 터질 무렵인 선조 때 함경도 경성(鏡城)에 북(北)병영과 북수영, 북청(北靑)에 남(南)병영, 함흥(咸興)에 남수영, 전라도 강진(康津)에 병영, 여수(麗水)에 좌(左)수영, 해남(海南)에 우(右)수영, 경상도 울산(蔚山)에 좌병영, 진주(晋州)에 우병영, 동래(東萊)에 좌수영, 거제(巨濟)에 우수영이 있었다. 조선왕조의 헌법격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조선 전역의 진영에 20여만 명의 군사를 배치하도록 되어 있었다. 군사는 시험에 의해 선발되는 갑사(甲士) 등 정병(正兵, 직업군인)이 중심이었고 병사들은 병농일치제(兵農一致制)로 16세 이상 60세까지의 농민을 윤번제로 징집해 복무케 했다. 현역을 상번(上番), 대기자를 하번(下番)이라 했고 하번은 집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군포(軍布)를 바치게 해 군비로 썼다. 포布는 곧 돈이었다. p26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일본이 반드시 쳐들어온다고 확신하고 전력을 다해 전쟁준비를 해나갔다. 그는 전쟁이 터지기 불과 1년 전인 1591년 2월(선조 24년)에 우연인지, 조선의 국운이었는지 종6품에 불과한 정읍(井邑)현감에서 정3품 당상관(堂上官)인 여수(麗水)의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에 파격적으로 기용되었다. 전함과 무기들을 정비하고 화약을 만들어 비축하며 방비를 구축하는 한편 군사들을 훈련해 강군으로 단련시켜 나갔다. 특히 전쟁이 터지기 직전까지 군관 나대용(羅大用)으로 하여금 거북선 두 척을 건조케 하여 진수시키고 함포 사격 훈련을 거듭했다. p62
난생 처음 듣는 총소리에 조선군 병사들이 혼비백산했으나 정발의 독려로 점차 냉정을 되찾으면서 용감히 싸웠다. 4시간의 사투가 벌어진 끝에 마침내 성의 북쪽이 무너지면서 일본군이 봇물 터지듯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10시쯤이었다. 정발이 총탄을 맞고 죽었고 조선군 병사들이 전멸했다. 3,000여 명이 몰살된 것으로 전한다. 곧이어 일본군 병사들이 미친 듯 성안을 뒤지며 300여 채의 건물에 불을 질러 불길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살해하거나 포로로 잡아갔다.동래 좌수영 박홍 수사가 모든 전함을 바다에 가라앉히고 군량 창고에 불을 지른 뒤 수영을 버리고 퇴각하다가 멀리 부산진성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이날 아침 조정에 장계를 띄웠다. ‘부산진성이 함락됐다.’ p83
그러나 그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믿고 조선 조정에 항복하라고 협박까지 했던 증원군사 10만 명은 끝까지 오지 않았다. 올 수도 없었다. 이미 남해 수로는 조선 수군 전라좌수영 이순신 함대가 제해권을 장악하고 수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일본의 조선 침공군 예비대 10만 명은 나고야 전진기지에 발이 묶였고 그 중 상당수 병력은 그 뒤 계속해서 부산으로 증파되어 육전에 투입되고 있었다. 천재적인 군사전략가 히데요시도 강력한 조선 수군의 존재는 물론 조선 의병군의 봉기를 계산하지 못했다. 조선 의병군의 봉기로 일본군 점령지역은 물론 부산에서 평양까지 길게 뻗어 있는 보급로를 위협 당하고 있어 이를 지키기 위해서도 엄청난 규모의 경비 병력이 추가로 요구되고 있었다. 히데요시의 수륙병진전략은 이미 빗나가고 있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 ‘우리 국가가 보존된 것은 오로지 남해 해전에서의 승리 때문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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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왜 한국인은 임진전쟁의 승리를
노래하지 않는 것인가!
420년 전 벌어진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다시 되짚었다.
‘난(亂)’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왜구가 쳐들어와 일으킨 난리’라는 측면에서 살펴본 기존의 임진왜란에 대한 개념을 일본, 한국, 중국(명)의 국제전쟁의 관점에서 살폈다. 시대상황뿐 아니라 7년간의 전쟁 과정을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해 자세히 설명한다. 전쟁 발발 전 각국의 정세상황, 일본의 침략 과정, 조선의 대응방법과 당시 수군의 수준, 전쟁 승리의 전략, 명의 파병 이유 등 그간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부분들에 대해 명확한 사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전전야에서부터 1차 전쟁 임진왜란, 2차 전쟁 정유재란 등 각 장별로 당시 상황을 쉽고 자세하게 설명해 역사에 대한 재미를 더한다.
조선의 최후 승리로 끝난 일본과의 7년 전쟁
다시 쓰는 임진전쟁의 역사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으로 다시 불거진 한일관계,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까지 끊임없는 국제정세의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한일’ 관계가 입에 올려지기만 해도 반감이 생기는 이유는 오랜 침략과 전쟁의 역사에서부터 기인한다.
그 중 하나의 전쟁이 벌어진 1592년 임진년. 조선과 일본 그리고 중국(명나라) 삼국간의 전쟁이 발발한다. 그리고 7년간 1,2차의 큰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 이후 3국은 승리와 패배라는 결과 외에 공통적으로 국토는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정세는 정권이 바뀔 만큼 급변한다. 이 전쟁은 4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을 만큼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우리는 이 전쟁을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전쟁의 당사자였던 한국, 일본, 중국(명)은 각각 이 전쟁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우리나라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이라고 부르는데, ‘난(亂)’을 붙인 이유는 임진년과 정유년에 왜적들이 쳐들어와 일으킨 난리라는 뜻이다. 반면에 일본은 ‘분로쿠노 야꾸(文祿の役)’, ‘게이죠노 야꾸(慶長の役)’라고 부른다. ‘분로쿠’는 1592년~1595년 천황의 호이며 ‘게이죠’는 1596~1614년 천황의 호이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야꾸(役)’인데, ‘정벌하다’를 의미한다. 중국은 ‘항왜원조(抗倭援朝)’라고 부른다. 여기서 ‘원(援)’은 ‘원조하다, 돕다’는 뜻이다.
이 전쟁을 뜻하는 각각의 이름만 살펴보아도 삼국이 이 전쟁을 해석하는 방향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삼국뿐만 아니다. 우리나라에서조차 이 전쟁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난리’로 볼 것인가, ‘전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는지, 패배했는지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도 역사 수업 논쟁의 주제거리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더불어 임진왜란에 대한 그간의 역사기술이나 이를 소재로 한 소설들에서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들이 종종 등장한다. 대표적인 의문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의 일본은 과연 국가도 아니었고 일본 병사들은 그 때까지 조선의 변방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던 왜구들과 같은 불법 무장집단에 불과했는가? 전쟁을 지휘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왜구들의 두목이었는가? 이 전쟁에서 조선 조정과 관군은 과연 무책임하고 무기력하게 도망만 다녔고 오직 의병들만이 분전했는가? 조선군은 칼과 활 그리고 낫과 죽창 등 원시무기로 무장했고 일본군은 조총(鳥銃) 등 전천후의 신무기로 무장했는가? 조선 수군의 신화는 과연 이순신의 영웅성과 거북선의 초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일까? 명나라는 과연 평소 저들을 잘 섬겨온 조선이 위기에 처한 게 안타까워 조선을 구해주러 저들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며 파병했는가? 명나라 군사가 승리를 이끌어주었는가? 그리고 조선은 패전했는가?
조선의 최후 승리는 조선 정부(조정)와 정부군(관군)의 줄기찬 전쟁 수행과 세계 전쟁사상 최초의 조직적인 조선 의병군의 유격전 활동 그리고 자신들의 국토에까지 전화가 번질 것을 우려해 예방 출전한 중국 명나라 군사와의 연합작전으로 거두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당시의 조선 백성들에서는 물론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도 거의 인식되어 있지 못하다.
조선 수군의 1, 2차 출동으로 8차례 해전이 벌어진 가운데 일본 수군은 무려 114척의 대소 전선을 잃었고 수병 손실이 16,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개전 이래 육전에서 승승장구, 거의 무패의 전황에 도취되어 있던 일본군으로서는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서울의 일본군 사령부는 물론 일본 나고야 기지의 히데요시도 믿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부산에 상륙할 때 조선 수군으로부터 이렇다 할 저항을 받아 본 일도 없었고 상륙 후 조선 수군이 스스로 전함들을 침몰시키고 자멸했음도 알았을 것이다. 조선 수군쯤은 적수로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존재조차 무시했을 것이다. 일본 수군은 부산을 점령하고 육군이 쾌속의 북진을 계속하는 동안 서쪽으로 남해안을 따라 경상도 우수영 관할 수역의 포구들을 차례로 침공하면서 화살 한 대의 저항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포구가 있는 곳이면 제집 마당인 양 들어가 선창에 안심하고 전선들을 밀집 대형으로 정박시켜 놓고 경비선 한 척 배치해 두지 않은 채 육지에 올라가 마음 놓고 분탕질 쳤다. 그러다 난데없이 나타난 조선 수군 함대의 벼락 치듯 하는 기습공격을 받고 번번이 전멸의 화를 입었다.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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