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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그리스 인문학의 체취를 느끼고 음미하기 위해 옴파로스를 향한 항해를 떠나보자
인문학은 그리스라는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왔다. 그리스는 인문학의 옴파로스, 즉 배꼽이다. 이 배꼽을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인문학의 역사와 신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스 이후의 인문학은 그리스에 대한 해석, 재해석, 재재해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라모스와 티스베를 새롭게 각색한 희곡이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에서 틀을 빌린 소설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그 시작은 모두 그리스의 인문정신이다. 그리스는 인문학의 모체, 인문학의 샘, 인문학의 고향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첫 번째 섬, 그리스 비극의 세계

메데이아, 악녀의 이유 있는 항변
영웅을 사랑한 공주 | 영웅의 배신과 악녀의 복수극 | 메데이아, “나에게도 할 말은 있다” | 크레온의 추방령과 메데이아의 계략 | 이아손의 변명, 그리스의 식민사관 | 네 아비의 악덕이 너를 죽인 것이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신화시대의 데카르트
공화국의 일등 공신 | 배제할 것인가 포용할 것인가 | 불, 정신의 암흑을 밝히는 코기토 | 몸이 산산조각 나도 굽히지 않겠노라

레오니다스와 300인의 영웅들
나는 관대하다 | 5백만 대군의 진격 | 그리스의 자유를 수호하라 | 테르모필레 전투

막 내리는 평화체제
훼손되는 조약문 | 엎치락뒤치락하는 민주제와 과두제 | 강자의 이익과 보편적 선(善)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니키아스 vs 알키비아데스 | 신성모독 사건 | 스파르타로 망명한 알키비아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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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박영규
정치학자에서 인문학자로 전향(?)한 이후 처음으로 펴낸 『인문학의 눈으로 본 행복한 국가와 정치』가 2015년 교양부문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중부대학교에서 개설했던 인문학강좌의 내용을 다듬어 2016년 4월 『인문학을 부탁해』라는 단행본으로 출간했으며, 이번에 펴내는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는 늦깎이 인문학자로서 저자가 선보이는 세 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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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첫 번째 섬, 그리스 비극의 세계

옴파로스를 향한 항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둘러볼 곳은 그리스 비극이라는 섬이다. 이 섬의 주인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다. 이들은 그리스 비극을 대표하는 3대 시인이다. 이들이 노래하는 소재의 궤적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호메로스의 서사시나 그리스 신화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트로이 전쟁을 비롯한 신화 속의 영웅들이 주된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관점은 확연히 다르다. 호메로스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말하는 불의(不義)가 여기서는 정의(正義)로 뒤바뀌기도 하고, 신화에서 말하는 일탈과 불륜이 여기서는 사랑과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두 번째 섬, 그리스 신화의 세계

그리스 인문학의 바다에서 다음에 우리가 둘러볼 곳은 그리스 신화라는 섬이다. 이 섬에는 뚜렷한 주인이 없다. 그러나 권위자는 있다. 토마스 불핀치와 오비디우스가 바로 그들이다.

토마스 불핀치는 『신화의 시대』(Age of Fable)라는 책의 저자다. Fable이라는 영어 단어는 국내 작가들이 우화, 전설로 번역해서 사용하지만 책의 내용으로 볼 때 우화나 전설이 아니라 신화로 번역하는 것이 올바른 용어 선택이다. 문어체로 된 영미권의 텍스트에서는 신화를 fable로 표기한다.

오비디우스는 『아이네이스』라는 서사시를 쓴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의 저자다.

우리가 재미있게 읽는 각종 그리스 신화 혹은 로마 신화는 대부분 토마스 불핀치와 오비디우스의 책을 짜깁기 혹은 재해석한 것들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섬을 둘러보면서 특별하게 주인의 눈치를 살필 일은 없다. 워낙 유명한 명승지라 모든 곳이 다 개방되어 있고, 사진 촬영도 무제한 허용되어 있다. 우리는 이번 항해에서 토마스 불핀치나 오비디우스처럼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신화 속에 숨어 있는 인문학적 메시지를 찾아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는 주로 비극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신화도, 전쟁을 주제로 한 신화도, 권력을 주제로 한 신화도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신화의 비극에는 그것이 단순한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비극은 나무로, 별로, 동물로 형상화되어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들이 모여 신비한 우주를 구성한다. 신화에서 비극은 단순한 삶의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신화는 삶의 모방이 아니라 삶의 원형이다.

세 번째 섬, 호메로스 서사시

항해에서 우리가 다음에 도착하는 섬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라는 쌍둥이 섬이다. 이 섬을 거치지 않고는 배꼽 근처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부득불 우리는 이 섬도 둘러봐야 한다. 우회로는 없다. 이 두 섬은 그리스 인문학의 관문에 해당된다. 섬의 주인은 호메로스다. 『일리아드』는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기록한 서사물이며, 『오디세이』는 목마의 꾀를 내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 장군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모험담이다.

이 섬에서 우리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 아이아스, 오디세우스와 같은 인간 영웅들과 제우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와 같은 신들을 만나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섬을 찾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 영웅들과 올림포스의 신들이 어우러져서 펼치는 트로이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인문학적인 메시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참고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그리스어를 영어로 옮긴 것이다. 그리스 인문학의 바다를 항해하는 입장에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라고 해야 마땅하겠지만 여기서는 통상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식 이름을 계속 쓰기로 한다.

네 번째 섬, 플루타르코스 『비교열전』

인문학의 옴파로스를 향한 항해에서 우리가 다음에 둘러볼 곳은 인간 영웅들의 섬이다. 이 섬에는 신화시대가 아니라 역사시대의 영웅들이 거주한다. 이들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만큼이나 후대에 널리 이름을 떨친 인간 영웅들이다. 이들에 관한 행적을 자세하게 기록한 대표적인 문헌은 플루타르코스의 『비교열전』이라는 책이다. 우리에게 『영웅전』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책에서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 시대의 인간 영웅들과 로마 시대의 인간 영웅들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 23명씩을 골라 그들의 행적과 사상을 쫓고 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각각의 장단점을 비교하면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원작의 제목도 『비교열전』이라고 붙였다. 인물들에 대해 비교적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그리스 인문학의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에게 더없이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한다. 아울러 다양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이 책을 지도 삼아 섬을 둘러보겠지만 플루타르코스의 인물 묘사를 그대로 쫓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쫓고 있는 영웅들 가운데 대표적인 영웅 세 사람을 골라서 그들의 삶에서 추출해 낼 수 있는 인문학적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어 섬을 둘러볼 것이다. 인물을 둘러보는 기준도 시대 순이 아니라 관심 순이다.

다섯 번째 섬, 헤로도토스 『역사』

다음에 우리가 둘러볼 곳은 그리스의 역사라는 섬이다. 이 섬에서 우리는 그리스 시대의 대표적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남긴 『역사』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그리스 비극이나 신화의 섬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리스 인문학의 색다른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책 모두 꽤나 두터운 고전이지만 역사의 의미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명저(名著)다. 문학 작품 뺨칠 정도로 문장의 구성력과 서사적 표현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그리스 인문학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섬들이다.

두 작품 가운데 우리가 먼저 둘러볼 곳은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섬이다. 『역사』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에 관한 기록이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300〉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테르모필레 전투 등이 헤로도토스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장면들이다. 이 섬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메시지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대답이다. 이 메시지에 주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왜 헤로도토스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여섯 번째 섬,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인문학의 옴파로스 그리스를 향한 항해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둘러볼 곳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섬이다. 이 섬에서 우리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두 맹주(盟主)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졌던 동족상잔의 상흔을 만나게 된다. 이 섬은 다른 섬들에 비해 항해 객들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적은 섬이다. 신화나 비극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자극적인 사랑 이야기도 없고,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에서 보았던 모험극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민족끼리의 내전(內戰)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이전의 섬들과는 또 다른 인문학적 의미를 가진다.

특히 6·25라는 뼈아픈 내전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인문학의 옴파로스, 그리스를 향한 항해를 마치지 전에 꼭 둘러봐야 할 섬이다.

이 섬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투키디데스의 손끝이다. 그가 어떤 관점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을 바라보는지, 그가 이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기록하는 투키디데스의 손끝을 주목해야 한다. 역사가로서 투키디데스의 손은 매우 유려하면서도 진지하다. 그러면서 날카롭다.

『총균쇠』의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가장 만나보고 싶은 역사적 인물로 투키디데스를 꼽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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