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언약] No. 77. 세상 끝에서 왜, 어떻게 예언을 저버리는가

#세상 #지구 #끝 #피니스테레 일요일이었던 #칠석날 #오후 2시 출발한 #버스안에서 ‘호수에’ #Josué는 순례길을 왜 걸었냐고 물었습니다. 막상 별거 없었다 하자 솔직한 영혼이라며 대부분 순례자가 그랬을 거라고 진단합니다.

언덕에 올라 끝이 보이지 않는 지구 끝, 세상 끝 바다를 마주할 때 일몰이 시작했습니다. 답답했던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그녀는 뜬금없이 엉뚱한 말을 했습니다. 저세상에서는 사라질 바다이기에 안전하지만은 않다고. 어떤 곳으로 대피해도, 어떻게 대비해도 소용없다고. 어차피 한 번 죽어야 하는데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세상 끝, 종말이 아무것도 아닌 개인에게도 찾아오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그런 문제는 생각 안 해봐서 잘 모르고 어렵다고 하니 이미 알고 있지 않냐며 우리가 보냄 받은 건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단계라고 했습니다. 저곳에서는 할 수 없을 일들을 실컷 하라고도 했습니다. 지혜를 쌓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선행을 하고 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일들과 같은. 그게 이 세상 지구의 끝, 피니스테레의 바다를 보여준 이유라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앞두고 걸어서 역행하는 바보 같은 짓은 인제 그만두라고도 합니다.

그때 문득 돌아갈 고향이 있는 상황,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회귀를 생각하다 대갚음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보응, 응보, 정의, 심판, 네메시스 nemesis. 왜 그 단어가 생각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저울과 모래시계, 날 선 검을 들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 행실에 따라 응당 받아야 할 천벌 또는 상. 선하고 악한 일이 원인과 결과에 따라 행복과 불행을 분배하는 과정.

그녀는 다가올 일들에 대한 지난 예언을 이제는 믿느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형이상학적 예언을 가장한 망상을 떠벌리는, 아무 말 대잔치 같아 기분이 불콰했습니다. 아름다웠어야 할 마무리는커녕 모든 걸 허망하게 놓친 뒤 땅끝에서 쫄쫄 굶고 노숙했습니다. 새벽녘 동이 틀 때, 진짜 별들의 들판으로 향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례 뒤 영적 충만함, 거룩한 아우라 같은 건 없었습니다. 쓸데없고 허황한 말들만 듣고 두려움에 떨 이유는 없다며, 상식대로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땐 알지 못했습니다. 곧 다가올 #마지막 때 #타임테이블도 까먹고 안전하다고 평안하다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산 건, 마지막을 준비할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거라고. 결국 저 믿지 않았던 예언 속으로 자처해 빨려 들어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