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언약] No. 76. 선한 투쟁의 시작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떠나며

#Hola #BuenCamino #순례 내내 들었던 말입니다. 오가며 마주치는 이들끼리 일상의 안부를 묻는 말인데 서로 혐오하고 노려보기만 하던 세계와 달라 참 반가웠습니다.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입성했습니다. 십 년도 넘은 일이지만, 분명 기억합니다. 7월 10일 출국 후 40일 만인 8월 19일, 한국에서는 ‘칠석’이라 불리는 날 도착했습니다. 800km가 넘는 순례 여정의 끝. 그러나 막상 사실 별거 없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건지 감흥도 없었습니다.

무얼 놓친 걸까 곰곰이 생각하며 순례자 사무실에서 증명서를 받고 나오는데 아까 뒷줄에 서 있던 한 젊은 여자가 따라오며 “세상의 끝인 피니스테레 Finesterre 로 갈 거냐” 물었습니다. 오가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또래의 여자. 배낭도 단출했고 지팡이도 가리비도 없어 순례자는 아닌 듯했습니다. 망설이고 있자니 오늘 바로 출발하자고 합니다. 한날한시, 인생에 단 한 번 있는 순례 증명서를 함께 받은 인연이니 세상 끝까지 가는 모험, 투쟁을 함께하자며.

동행했던 길동무들을 사흘 기다리는 게 관습이라는데 바로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삶이란 결국 만나고 떠나보내고 다시 만나는 일의 연속. 그 일상의 선한 투쟁이라지만, 뭔가 찜찜했습니다.

오늘이 칠석이니, 오작교에서 직녀를 만났다고 여기고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걷기만 해서 길에서 못 보고 지나친 것도 있다는 것. 좁게만 혹은 발아래, 땅만 봤다는 것. 땅끝, 피니스테레로 생소한 인연과 동행하며 버스를 타기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끝장을 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 이 희귀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이성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