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언약] No. 70. 길을 잃었다

1 year ago

#옛 #수도원 개조한 #론세스바예스 숙소는 생경했습니다. 집단 합숙소를 방불케 한 이곳 사방에서 코 고는 소리, 부스럭대며 조용히 떠드는 목소리까지 들려 밤새 잠을 못 이뤘습니다. 결국 보기 좋게 늦잠을 자서 미사도 놓쳤습니다.

미국 가족은 보이지 않았고, 우연히 지나쳤던 일본 여자와 저만 남았습니다. 그녀를 보니 택시를 타고픈 유혹이 밀렸지만, 이겨냈습니다. 제일 늦게 출발하면서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나 아니,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고민이었습니다.

나바라주의 빰쁠로냐(Pamplona)에 도착했습니다. 구도시와 신도시가 어색하게 엮인 삭막한 산업도시라 순례길과 어울리지 않아 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빰쁠로냐를 막 지나치면서 순례길을 알리는 사인을 잃었고, 오가며 마주치고 위안이 됐던 친구들을 결국 놓쳤습니다. 아무도 없는, 길 아닌 곳으로 한참을 돌고 돌다가, 4.7km를 더 걸어 시주르 메노르(Cizur Menor)에 도착했습니다.

분명 길에서 보지 못했는데 그 일본 여자가 이곳 주방에서 흰쌀밥을 푸지게 먹고 있었습니다. 빰쁠로냐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합니다. 친할머니가 젊었을 때, 지금 자기 나이 때 걸었던 길이라고, 꼭 가보라 한 곳인데 정작 자신과는 맞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힘들고, 볼 것 없다고. 종교심으로 참고 걸을 만한 가치도, 의미도 없다고. 다들 장사치들 뿐이라고. 순례자들은 그저 여행자로 별꼴을 다 봤다고. 현실적인 말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 이 친구는 쉽게 포기했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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