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공기의 반은 담배 연기다, 박희용, 마요르카, 그라나다, 몬세라트 수도원, 피카소 박물관,알함브라, 올레, 게스트하웃, 팡콘토마테, 레드와인, 살라미, 하몬, 돼지고기,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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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어떤 귀향
미안하다, 올레여!
어떤 귀향

2부 비 오는 바르셀로나, 타파스의 추억
바르셀로나 공기의 절반은 담배 연기다
동굴과 자유의 섬 마요르카
그라나다, 로열 채플과 알함브라의 변주곡
숨은 가우디 찾기, 사그라다 파밀리아

3부 지리산 블루스
3월에 내리는 눈
두 도시 이야기
지리산 블루스
책 속으로
아뿔싸!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었다. 샤워실 문을 여는 순간 몸이 굳고 말았다. 굳이 넘겨다보면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과히 높지 않은 칸막이를 두른 샤워 부스가 마찬가지 구조의 화장실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편하게 비누칠은커녕 소리조차 마음대로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투숙객은 모두 젊은 여성들뿐이었으니까!
스스럼없이 제 할 일 다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포위되어 화장실 가기도 포기했다. 방문 꼭꼭 걸어 잠근 채 우리는 끝내 숨쉬는 것조차 속으로 삼켜야 했다. 쉴 새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누구를 향한 저주를 밀교의 주문마냥 중얼거리며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24쪽

조용필의 19집 〈헬로〉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내가 이 앨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가수나 노래 때문은 아니다. 단지 이 땅의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었으며 한때 민주화의 투사들이었으나 어느 순간 외로운 아버지이자 수구꼴통의 꼰대로 바야흐로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소위 베이비부머(1955~63년 사이에 태어난 전후 세대)들의 쓸쓸한 심정을 그린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가 가사를 쓴 〈어느 날 귀로에서〉란 곡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어서이다. …
그렇다. 더도 덜도 말고 바로 그 베이비부머의 일원으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셔야 하되 애들에게는 의지할 수 없다는, 그래서 대책 없이 노년을 맞고 있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헌사(《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송호근 저, 도서출판 이와우, 2013)의 바로 ‘그들’ 중 한 명이 나였던 것이다. -45쪽

드디어 저녁 투어의 시작인 첫 번째 식당, 카탈루냐 산 레드와인에 이 집만의 타파스가 나온다. 올리브유에 넣고 조리한 크지만 맵지 않은 고추와 하몽 등을 딱딱한 빵 위에 올려 한입에 먹는다. …
어느 식당엘 가도 거의 예외 없이 큼직한 돼지 뒷다리가 눈에 띄게 진열되어 있고, 직접 잘라주기도 한다. 굳이 와인이 아니라 우리 식의 소주 안주로도 아주 제격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출발 전에 유적지 관광보다 하몽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두 번째 식당에서는 앤초비의 원재료인 튀긴 생멸치에 샐러드, 토마토, 양파, 올리브를 곁들여 먹었다. 직접 제조했다는 화이트 와인을 자랑한다. 매장 내에 Vino Rose(로즈 와인), Tinto(레드 와인), Blanco(화이트 와인)라고 라벨이 붙어 있는 큼지막한 오크통이 자리 잡고 있다. 튀긴 생멸치를 통째로 내놓고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특징이다.
세 번째 식당은 가이드가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별 모양 문양이 예쁜 라벨을 부착한 레드 와인이 나쁘지 않았다. 팡콘토마테Pan con Tomate가 별미다. 구운 빵에다
생마늘을 잘라 문지르고 그 위에 토마토를 으깨 문지른 다음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리고 먹는 전통 음식이다. 원재료로 직접 만들어 먹도록 해 맛은 물론이고 재미도 쏠쏠했다. 스페인 소시지인 초리초, 이태리식 소시지인 살라미, 하몽 두 가지 등 네 종류의 돼지고기가 구미를 돋운다.
네 번째 식당에서는 다시 화이트 와인이다. 새 주둥이처럼 생긴 유리잔에 화이트 와인을 따라 흘리지 않고 돌아가며 먹는방식이 이 집의 전통이란다. 각종 치즈에 문어를 오븐에 구워 으깬 감자 소스 바른 것, 구운 감자에 매운 소스 뿌린 것 등을 내놓았다. 이런 자리라면 절대 사양할 일이 없지. 최전방 철책 사단에서 단련된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 두 순배를 도는데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와인을 비워내 일행들의 환호를 받았다. -79쪽

휴지 한 장 떨어져 있지 않고, 침을 함부로 뱉지 않으며, 껌을 씹다가 들키면 아직도 태형이 시행된다는, 질서와 준법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한 곳이 싱가포르다. 그런데 한 꺼풀만
더 들여다보면, 한 발자국만 더 뒷길로 들어가 보면 찔러도 피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이 사람들의 온 몸에서 온기가 돈다. 뒷골목은 우리네 뒷골목처럼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가히 흡연자의 천국이다. 택시는 마음먹은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방향을 바꾼다. 우하하하, 하향평준화면 또 어떤가. 기분이 상쾌해진다. -201쪽

천왕봉 일출은커녕 지리산 자락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 -239쪽 닫기
출판사 서평
이 책의 저자는 약학박사다. 누구나 여행하고 여행기를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이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대목이 있다. 이 땅의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생을 헌신해온 베이비부머 세대의 시린 가슴과 쓸쓸함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모든 부양책임을 짊어지지만 부모는 당연히 모시되 자식에게는 의지할 수 없는,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세대다. 저자는 그 가운데서도 특출난 존재이지 싶다. 그는 어림잡아 1년에 아침은 350번, 저녁은 300번 남짓 부친과 식사를 함께한다. 30년 전 모친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부친과 함께 식사하는 게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 여행은 늘 시간의 문제였다. 떠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절실하게 ‘일상의 풍경’을 지키고도 싶었다. 타협이 쉽지 않은 속에서 ‘여행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리면 못 간다’는 부인의 말을 핑계 삼아 때때로 못 이기는 척 비행기를 타곤 했다.
저자의 선배인 시인 임종철은 저자에게 ‘대충대충 한다, 건성건성 한다는 없다’며 저자가 자기 삶 앞에 얼마나 정직한지를 회고한다. 저자에게 성실히 ‘걷는다는 것은 삶의 일상’이다. 그런 그에게 ‘여행은 걷는 삶의 보완재’라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자유롭지 못해서일까. 막상 집을 떠나고 나면 그는 더욱 절실하게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아쉬운 시간만큼 그 시간을 고마워하고, 여행지의 속살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려 노력하고, 함께한 사람들의 배려에 눈물겨워한다. 때로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을 학대해가며 수백 킬로미터를 걷기도 한다. 그 속에서 그는 ‘여행은 떠나는 것이자 떠남으로써 완성되는 그리움 같은 것’임을 깨닫는다.
〈지리산 블루스〉는 프로 여행자의 냄새가 물씬하다. 강의나 교육이 없는 날 홀연히 떠나 지리산 종주하기를 십수 년째 해오고 있어서일 것이다. ‘천왕봉 일출은커녕 지리산 자락 그림자도 밟아보지 못한 자들이 행세하는 세상!’이라는 유쾌한 유머 한켠에는 ‘천왕봉 새끼신령’으로서의 자부심도 묻어난다. 이렇듯 여행기 전편에는 저자 특유의 유머가 넘쳐난다. 평생의 업業인 ‘재미있게 강의하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내공이 느껴진다. ‘바르셀로나 공기의 절반은 담배 연기’라니, 남다른 통찰력과 유머가 느껴지지 않는가.
여행기는 마치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저자가 즐기는 낮술이라도 한잔 나누는 느낌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마요르카에서는 유유자적 ‘타파스’ 맛 기행을 선보인다. 일본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제주에서도 미식과 탐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늙은 부모를 모셔야 하는 베이비부머의 숙명은 해방과 함께 귀국후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부친의 고향마을을 찾아 부친의 삶의 생채기를 위로해드리는 감동적인 일본 여행에서 더할 수 없는 보람으로 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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