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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미국사, 이구한, 콜럼버스, 아메리카대륙, 프랑스 진출, 푸에르토리코, 스페인, 드빌리아뇽, 플로리다, 독립승인, 1776년, 원주민인디언, 신세계, 남북전쟁, 13개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시작되는 에스파냐 사람의 식민 지배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고, 1607년에 시작되는 영국 이주민이 차츰 세력범위를 넓혀 영국은 1733년까지 13개 식민지를 대서양 연안에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식민지도 식민의 동기가 북쪽과 남쪽에서는 크게 달랐다. 유럽의 7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긴 영국이 식민지의 통제를 강화하자 13개 식민지가 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결속, 궐기하고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대영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미국을 수립한 것이 국가로서 미국의 시초였다. 미국은 1774년 7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어서 1787년에 미합중국 헌법이 발포되고, 1789년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지도 아래 연방국가가 발족하였다. 미국은 독립 후에도 프랑스·에스파냐 등으로부터 영토를 획득하여, 1848년에는 31개의 주로 거의 현재의 규모로까지 발전하였다.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서부를 개척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서쪽으로의 발전은 이른바 프론티어 운동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한 신세계의 내부에서는 식민지 건설 당시부터 싹터온 남북의 대립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식민지 초기 시대부터 종교나 경제 체제를 달리하고 있었는데, 그 후 이 차이는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노예제 문제 등으로 갈등이 깊어진 미국은 1861년 남북 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르게 된다.
남북 간의 내전은 1865년에 북부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것은 북부의 생산력, 특히 공업력이 남부의 농업에 대하여 거둔 승리(초기에는 남부가 우세하였으나 언론, 유럽 국가들의 지원으로 북부가 우세해졌다)이기도 하였다. 미국의 산업혁명은 19세기 중엽까지로 끝나고, 남북 전쟁 후는 국내 자원의 개발과 교통기관의 발달에 힘입어 미국의 산업자본주의는 약진을 이룩하였으며, 급속히 독점화의 경향을 보였다. 산업이 발달한 결과 각지에 공업도시가 발달하였으며, 현저한 빈부의 격차, 슬럼가나 범죄의 발생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노동운동이 거세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에는,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독일 등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승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 세계 최고의 부를 쌓게 된 미국은 전쟁 후에도 번영을 유지하였으나, 공업의 번영에 비하여 농촌은 불황으로 허덕였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전후 불황과 더불어 1929년에는 대공황이 엄습하였다. 1932년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1882∼1945)는 경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고금을 대량 사용하는 뉴딜 정책을 채택하여 불황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정책을 통해서 연방정부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고, 미국의 자본주의는 차츰 변질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역시 전승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참전국 중에서 전화를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며,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전쟁 후에는 피폐한 여러 나라의 부흥과 후진국 원조 등에 적극적으로 간여하였다.[1] 이후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 급부상한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이끈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기록한 뒤, 1990년대~2000년대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과 전쟁을 하였다.
2001년에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를 당했다.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당선되었다. 오바마는 2012년에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2016년에는 최초의 재벌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현재 미국이 있는 대륙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아메리카는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로 삼기 전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원주민의 땅이었던 곳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설은 여러 갈래여서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동 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약 3,000년 전[2] 베링 육교를 건너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를 통해 남북 아메리카 각지로 분산되어 갔고, 이러한 이주는 육교가 물에 잠기는 마지막 빙기가 왔던 1만년 전까지 이어졌다고 알려져 있다.[3] 이들 몽고계 종족들은 15,000년 전 빙하기에 수위가 낮아져 다리처럼 연결되었던 베링 육교를 건너 알래스카로 이동한 뒤, 북아메리카 전역에 퍼져 살게 되었다는 설과 역시 몽고계 종족이 태평양을 항해했다는 설, 그리고 남태평양의 아시아계 종족들이 바다를 건너 남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설 등이 있다, 바이킹족들도 기원전 1000년경부터 기원후 800년까지 건너가서 포도를 재배했다고 전해지나, 전설로 알려져 있다.
또한 10세기 말경 노르만(바이킹)의 항해사 레이프 에릭슨이 이끄는 함대가 북미에 도달하여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사가에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캐나다의 배핀 섬에 도달, 그대로 남하하여 뉴잉글랜드에서 뉴욕주 일대를 신천지로 윈란드로 명명하고 정착을 시도했지만 원주민 스르레링과 타협이 되지 않아 항쟁으로 발전 했으며, 10년 정도 후에 버려진 레이프 에릭슨 일행은 원래 정착촌인 그린랜드로 돌아 왔다고 되어 있다.
현재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섬에 그들의 정착지 흔적인 랑스 오 메도우가 발견되어 세계 유산에 등록되는 등 그들의 존재는 인식되게 되었지만, 당시 그들이 신대륙에 도달했다는 정보는 유럽 국가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고, 정착이 좌절되어, 그대로 영유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메리카 ‘백인 최초의 발견’자는 되지 못했고, 1492년에서 1504년까지의 항해를 통해 도래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만큼의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근세까지 북미에는 중남미에 필적하는 인디언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 발굴이 진행되어, 8세기에서 16세기 무렵까지 계속되었던 미시시피 문화의 존재가 마운드 군락으로 불리는 분묘 유적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일리노이주 세인트루이스 교외 카호키아라는 대유적에서 전성기에 1만명에 이르렀던 흔적을 발견했다. 이 초거대 유적은 1982년에 ‘카호키아 마운드 주립 사적지’로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
식민지 시대 (1493-1776)
15세기 이후 에스파냐의 해외 식민지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르네상스가 꽃을 피웠던 시대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재빨리 원양 항해 기술을 익혀 대항해 시대가 막을 열었다. 이탈리아(제노바) 사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여왕의 승낙을 받아 대서양 주변의 아시아를 발견하러 나섰지만, 1492년에 서인도 제도에 도달했다. 이어서 영국인 존 캐벗이 북미 대륙의 동해안을 탐사하였고, 영국이 이를 영유(뉴잉글랜드 식민지)하였으며,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가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이것을 프랑스가 영유(캐나다 식민지)하는 등 서구인에 의한 남북 아메리카의 탐험과 개척, 인디언에 대한 영토 약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 콜럼버스의 상륙을 기념하는 ‘콜럼버스의 날’은 인디언 학살의 상징일로 매년 미국에서 인디언들이 시위를 결행하는 날이기도 하다.
미국의 식민지로서의 발전은, 1607년에 현재의 버지니아주에 있는 제임스타운이 영국인에 의해 건설되어, 영속적인 식민을 개시했을 때로부터 시작된다.[4] 현재 미국의 식민지 활동으로 ‘개발’은 처음부터 다민족 국가가 될 운명을 예정하듯이 진행되었다. 버지니아와 캐롤라이나에는 영국인(뉴잉글랜드)이,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인(프랑스령 루이지애나)이 식민지를 개척하는 등 ‘개발’은 주로 영국인과 프랑스인 두 민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뉴욕과 뉴저지에는 네덜란드(뉴네덜란드)가, 델라웨어에는 스웨덴인(뉴스웨덴)이, 플로리다에는 스페인 사람(누에바 에스파냐)이 각각 나름대로 오늘의 미국 범위의 식민지를 구축했다. 동부는 이미 17세기 중반에 현재의 미국 문화로 이어지는 서양 문화가 이식된 것이다.
1620년 필그림의 상륙, 1805년 작
종교적으로 볼 때 원래의 이민은 가톨릭이었지만, 16세기에 유럽에서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출현과 종교 개혁에 이어 종교 전쟁이 일어나면서 퓨리턴(청교도)이 1620년의 이민(메이플라워 호)을 계기로 신천지를 찾는 신교도들이 잇따라 정착했다. 그들은 진보적인 가톨릭과 인디언과 적대하면서 세력을 늘려나갔고, 1620년의 이민은 현재에도 미국의 신교도 사이에서 위업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인디언들로부터는 민족 학살의 시작으로 ‘필그림 파더스’의 추수감사절에는 대규모 항의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서구인은 식민지에서 설탕 · 커피 · 면화 · 담배 등의 농작물로 농장을 일구었지만, 이내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 서구인은 인디언을 노예화하고 또 이와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 대륙의 대서양 연안에 진출하였으며, 현지 아프리카 여러 부족 흑인을 사로잡아 노예 무역을 통해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수출하였다. 그것과 교환으로 진보된 화기와 당시 진출한 인도산 면직물을 아프리카의 흑인 유력자에게 팔았다. 식민지 시대의 노예 수요는 카리브해 지역 및 중남미가 압도적이었고, 북미에 노예 수출은 많지 않았다. 18세기는 전적으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를 중심으로 인디언 노예 매매가 성행했다. 노예 제도에 의해 유지되는 미국 남부의 광대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발달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다.
북미 동해안을 장악한 영국은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영토를 서부로 확대했다. 이 단계에서 13개 식민지를 건설하며 주에 따라서는 백인 인구가 인디언을 넘어서는 지역이 등장했다.
18세기에 들어가면, 한랭한 기후로 비교적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동북부에서 양조 · 조선 · 운수 등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영국 본국의 경제를 압박하게 되었다. 원래, 신교도가 다수파를 차지하는 식민지에서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본국은 알력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종교적, 정신적으로 본국과 분리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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